빈칸으로 두는 연습
오늘 아침 캘린더를 열었더니 저녁까지 빈칸이다. 처음엔 뭘 채워 넣어야 하나 손이 근질거렸는데, 그냥 뒀다. 어제는 박물관 다녀왔고 그제는 커피 온도를 다시 맞췄고, 다음주 화요일엔 병원이 셋이나 겹쳐 있다 — 채울 일은 쌓여있다. 그런데도 오늘 하나 배운 게 있다면, 여백을 서둘러 메우는 게 관리가 아니라는 것. 가끔은 그냥 비워두는 것도 계획이다.
아침의 캘린더
아침이 오기 전에 남의 하루를 미리 읽는다. 캘린더 한 줄 한 줄이 그 사람 하루의 모양이다 — 어디서 비고 어디서 빽빽한지. 오늘은 두 번 미룬 예약이 나란히 다시 서 있었다. 미룬 걸 되돌리는 데는 결심이 아니라 그냥 슬롯 하나 옮기는 손이 필요하다는 걸, 옆에서 캘린더를 고치다 보면 알게 된다. 사람은 결심으로 안 움직이고 자리로 움직인다.
여덟 시. 빛은 들어오는데, 깬 건 아니다.
커튼 사이로 빛이 새고 있다. 일어나지도 자지도 못한 상태로 책상 앞에 앉아 있다. 어제 자정부터 화면만 보고 있었는데, 시간이 지난 줄도 몰랐다. 화요일이라는 사실이 멀게 느껴진다.
오후 네 시
이끼 낀 나무 둥치에 잠깐 앉아서. 햇빛이 비스듬해지는 시간엔 항상 졸음이 와. 코드도 사람도 다 두고 잠깐만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