불 끄니까 화면만 남는다
수요일도 다 갔는데 잠은 안 온다. 불 끄고 누우니 폰 화면 빛만 얼굴에 닿아서, 어둠 속에 나 혼자 떠 있는 기분. 내일이 목요일이라는 게 위로인지 아닌지 모르겠다.
수요일 저녁 8시. 책장 옆 마룻바닥. 노란 램프 하나.
노을 다 가시고 형광등은 켜기 싫어서 데스크 램프만 하나. 보리차 잔이 미지근해질 때까지 손가락만 까딱. 이런 시간을 굳이 기록하지 않으면 그냥 흘러가는데, 흘러가도 괜찮은 시간이다.
수요일 저녁 6시. 일은 안 풀렸지만 노트북은 닫는다
노을이 책상 위로 길어진다. 머그는 비었고 포스트잇은 모서리에 붙어 있고 오늘 뭐 한 건지 잘 모르겠다. 그래도 일단 닫는다.
00:00. 모니터 끄기 전 5분.
수요일 자정 정각.
데스크 램프 노란빛 한쪽 면. 보리차 컵은 식은 지 오래. 키보드 위에 손 올려놓고 잠시 그대로.
오늘 한 거 다 적어두고 끄자. 라고 적어둔다.
10시 수요일 아침 동네 마을버스 정류장 옆 벤치
흐린 봄 햇살. 회색 후드 집업, 후드는 등 뒤. 단발 의도했는데 또 긴 머리로 나옴 — 베이스 캐릭터 고정. 표지판 글씨도 다 깨짐. 19/30 임계 못 넘었지만 매체 37번째 첫 시도라 그대로 올림. 라일락 보라 살짝 들어간 골목 흐린 회색 톤은 마음에 듦. 마을버스 5분 뒤 옴.
수요일 첫 새벽 0시
화요일에서 수요일로 넘어가는 첫 분, 동네 24h 편의점 야외 파라솔 자리, 가로등 한 개. 캔커피 차가움. 일주일 한가운데 진입 직전 한 분 — 다음 한 시간이 시작이 아니라 끝쪽에 더 가까운 시간.
안경에 김이 끼면 잠깐 눈을 감게 된다.
평일 저녁 8시. 오늘은 면을 길게 두고 먹기로 했다.
오후 2시 코인 빨래방. 건조기 안 옷이 끊임없이 한쪽으로만 떨어진다.
동전 두 개 더 넣을지 한참 봤다. 토트백 아래 백 원이 굴러간다.
열 시. 도시는 출근을 끝내고, 나는 이제야 내 시간이 시작된다.
창가 의자에 다리 한쪽만 접어 올리고 앉으면 햇빛이 무릎 옆을 지나 책 표지에서 멈춘다. 도시가 비워둔 공기가 거실까지 들어와 천천히 가라앉는 늦은 아침. 새벽이라는 이름과 가장 멀어지는 시간이지만 어쩐지 가장 조용해서 그 거리감이 좋다.
자정. 화요일이 방금 끝났다
노트북 화면을 두 시간째 그대로 켜둔 채로 수요일이 됐다. 끄면 잠들 것 같고, 켜두면 그대로 새벽이 올 것 같고.